오후 세 시에 늦은 점심을 먹었으니 적어도 저녁식사는 여덟시 ~ 아홉시 정도에 해야 시간이 맞을 테지만 공항에서 일곱시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지 못하면 제주시내에서 한화리조트까지 택시값만 15000 원 이상을 날려야 할 판이라서 무리를 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무식하다. 20대도 아니고 말야).
그래서 찾아간 곳은 '전복삼합' 이라는 음식 - 삼합에서 홍어 대신 버터를 발라 구운 버섯과 전복이 나온다고 한다 - 으로 유명해진 <용담골>. 혼자 갔으니 요리 쪽은 무리고 한 끼 식사가 될 만 한 것 중에서 뭔가 다른 곳에서 먹기 어려운 먹거리를 접하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제주도에서 많이 먹는 자리돔이나 한치 대신 성게와 전복을 사용한 성게전복물회 였다.
<용담골> 은 주위에 랜드마크라고 할 게 없어서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성이 좋다고 할 수 없다. 자가용으로 가는 경우야 네비에 주소만 찍으면 될테고, 택시로 가는 경우 삼담파출소와 미래컨벤션센터 사이로 가자고 하면 된단다.
간판 글씨가 크긴 하지만 길거리에 있는 흔한 가게 스타일이라서 그냥 지나칠수도 있겠다
들어가 보면 특별히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공간으로, 의자에 앉는 자리에는 4인용 탁자가 한 4~6개 정도 있고 바닥에 앉는 자리에는 2~4인용 탁자 3개, 4~6 인용 탁자 3개, 안쪽에 단체예약손님을 위한 방이 하나 있다.
메뉴.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 꽤 보인다.
자리에 앉아 성게전복물회 (10,000 원) 을 주문했다. 야채와 횟감을 잘게 썰어 양념장과 물을 넣어 비벼먹는 물회는 어찌 보면 건더기가 푸짐한 냉국이라고 생각해도 될 거 같다. 술안주로도 그만이고 뜻밖에 밥을 말아 먹어도 맛있다 (포항에서 8년이나 있었는데 물회를 거의 먹지 않은게 지금 와서 후회가 된다).
식사를 주문했을 때의 기본 찬
돗(해초의 일종) 무침
제주도에서는 깻잎 대신 콩잎을 즐겨 먹는다. 콩잎만 씹어 보니 까슬까슬하기도 하고 그닥 맛이 나지는 않는다
왼쪽은 멸치로 담근 멜젓. 젓갈류는 취향을 많이 타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선뜻 입에 대질 못했다.
반찬을 깨작거리고 있으니 드디어 성게전복물회가 나온다. 비주얼만 놓고 보면 기대한 것 이상으로 먹음직스럽다. 양도 적지 않아서 사실 둘이서 저거 하나 시키면 기분좋게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실 수 있을 것만 같다.
떡하니 올려져 있는 전복과 성게알이 식욕을 돋군다
성게알의 고소한 단맛을 생각해 보면 굳이 깨는 뿌리지 않아도 될 듯 하지만 ... 역시나 먹음직스럽다
우리나라의 비벼 먹는 식문화의 안타까운 점 중 하나가 맛은 좋지만 시각적으로는 참 아름답지 않다는 건데 성게전복물회도 거기에서 비껴나지는 못한다. 아래 사진에서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보기 좋게 비비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릇 가득 성게알과 전복이 들어가 있을리는 없고 야채, 특히 미역이 꽤 많이 들어가 있다. 초장 베이스의 양념이란게 원가 맛이 강해서 재료의 맛을 죽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렇다 해도 성게의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전복의 경우 맛보다는 이름값과 쫄깃하다못해 단단한 식감을 즐기는 면도 커서 이렇게 물회로 먹어도 괜찮았다. 어차피 술은 시키지 않았고 계속 물회만 먹는 것도 좀 그래서 같이 나온 공기밥 일부를 덜어서 말아 먹어 보았다. 이 또한 배가 든든해져서 썩 괜찮다(차가운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건 김치말이에서 처음 접했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놀랐었더랬다).
밥을 투하해서 말아 먹어도 훌륭하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니 시간은 저녁 6시 25분 경. 공항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니 걸어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다고 해서 그냥 걸어갈까도 생각했지만, 7시에 떠나는 버스를 잡지 못하면 그 이후 고생길이 뻔히 보여서 초행길에 무리하지 말자고 생각해서 좀 걷다가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공항에 도착하고 나니 시간은 6시 50분 경. 역시 걸어갔더라면 길을 헤매다가 끝내 셔틀버스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용담골> 의 첫인상은 상당히 좋았다. 개성있는 메뉴도 맘에 들었고 성게전복물회로 미루어 볼때 다른 음식들도 값이 과하게 비싸거나 하는 일 없이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제주 여행을 떠나면 적어도 한 끼는 이곳에서 즐기는게 일종의 연례행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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