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에 늦은 점심을 먹었으니 적어도 저녁식사는 여덟시 ~ 아홉시 정도에 해야 시간이 맞을 테지만 공항에서 일곱시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지 못하면 제주시내에서 한화리조트까지 택시값만 15000 원 이상을 날려야 할 판이라서 무리를 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무식하다. 20대도 아니고 말야).

그래서 찾아간 곳은 '전복삼합' 이라는 음식 - 삼합에서 홍어 대신 버터를 발라 구운 버섯과 전복이 나온다고 한다 - 으로 유명해진 <용담골>.  혼자 갔으니 요리 쪽은 무리고 한 끼 식사가 될 만 한 것 중에서 뭔가 다른 곳에서 먹기 어려운 먹거리를 접하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제주도에서 많이 먹는 자리돔이나 한치 대신 성게와 전복을 사용한 성게전복물회 였다.

<용담골> 은 주위에 랜드마크라고 할 게 없어서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성이 좋다고 할 수 없다. 자가용으로 가는 경우야 네비에 주소만 찍으면 될테고, 택시로 가는 경우 삼담파출소와 미래컨벤션센터 사이로 가자고 하면 된단다. 

간판 글씨가 크긴 하지만 길거리에 있는 흔한 가게 스타일이라서 그냥 지나칠수도 있겠다

들어가 보면 특별히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공간으로, 의자에 앉는 자리에는 4인용 탁자가 한 4~6개 정도 있고 바닥에 앉는 자리에는 2~4인용 탁자 3개, 4~6 인용 탁자 3개,  안쪽에 단체예약손님을 위한 방이 하나 있다.

메뉴.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 꽤 보인다.

자리에 앉아 성게전복물회 (10,000 원) 을 주문했다. 야채와 횟감을 잘게 썰어 양념장과 물을 넣어 비벼먹는 물회는 어찌 보면 건더기가 푸짐한 냉국이라고 생각해도 될 거 같다. 술안주로도 그만이고 뜻밖에 밥을 말아 먹어도 맛있다 (포항에서 8년이나 있었는데 물회를 거의 먹지 않은게 지금 와서 후회가 된다). 

식사를 주문했을 때의 기본 찬

돗(해초의 일종) 무침

제주도에서는 깻잎 대신 콩잎을 즐겨 먹는다. 콩잎만 씹어 보니 까슬까슬하기도 하고 그닥 맛이 나지는 않는다

왼쪽은 멸치로 담근 멜젓. 젓갈류는 취향을 많이 타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선뜻 입에 대질 못했다.


반찬을 깨작거리고 있으니 드디어 성게전복물회가 나온다. 비주얼만 놓고 보면 기대한 것 이상으로 먹음직스럽다. 양도 적지 않아서 사실 둘이서 저거 하나 시키면 기분좋게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실 수 있을 것만 같다.

떡하니 올려져 있는 전복과 성게알이 식욕을 돋군다

성게알의 고소한 단맛을 생각해 보면 굳이 깨는 뿌리지 않아도 될 듯 하지만 ... 역시나 먹음직스럽다

우리나라의 비벼 먹는 식문화의 안타까운 점 중 하나가 맛은 좋지만 시각적으로는 참 아름답지 않다는 건데 성게전복물회도 거기에서 비껴나지는 못한다. 아래 사진에서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보기 좋게 비비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릇 가득 성게알과 전복이 들어가 있을리는 없고 야채, 특히 미역이 꽤 많이 들어가 있다. 초장 베이스의 양념이란게 원가 맛이 강해서 재료의 맛을 죽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렇다 해도 성게의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전복의 경우 맛보다는 이름값과 쫄깃하다못해 단단한 식감을 즐기는 면도 커서 이렇게 물회로 먹어도 괜찮았다.  어차피 술은 시키지 않았고 계속 물회만 먹는 것도 좀 그래서 같이 나온 공기밥 일부를 덜어서 말아 먹어 보았다. 이 또한 배가 든든해져서 썩 괜찮다(차가운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건 김치말이에서 처음 접했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놀랐었더랬다).

밥을 투하해서 말아 먹어도 훌륭하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니 시간은 저녁 6시 25분 경. 공항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니 걸어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다고 해서 그냥 걸어갈까도 생각했지만,  7시에 떠나는 버스를 잡지 못하면 그 이후 고생길이 뻔히 보여서 초행길에 무리하지 말자고 생각해서 좀 걷다가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공항에 도착하고 나니 시간은 6시 50분 경. 역시 걸어갔더라면 길을 헤매다가 끝내 셔틀버스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용담골> 의 첫인상은 상당히 좋았다. 개성있는 메뉴도 맘에 들었고 성게전복물회로 미루어 볼때 다른 음식들도 값이 과하게 비싸거나 하는 일 없이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제주 여행을 떠나면 적어도 한 끼는 이곳에서 즐기는게 일종의 연례행사가 되지 않을까.


다음 글 - 제주도 여행 <둘째날>  - 시외버스터미널과 대정(모슬포)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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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고기국수라는 독특한 지방음식이 있다고 해서 이전부터 많이 기대를 걸었다. 우리나라의 국수 하면 멸치 베이스의 잔치국수나 사골 또는 해물 육수 베이스의 칼국수,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장에 비벼먹는 비빔국수, 콩국수, 팥국수 말고는 다른 유형을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종래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새로운 국수가 있다는 건 너무나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슬슬 눈치를 채셨겠지만 난 정말 국수, 면 종류를 좋아한다). 

원래는 고기국수로 유명한 곳을 적어도 세 군데 정도 돌아보고 고기국수의 스타일을 파악한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정상 문제로 첫날 늦은 점심으로 먹은 삼대국수회관의 고기국수가 유일한 경험이었다. 지금 떠올려봐도 얼마나 아쉬운지. 삼대국수회관은 삼성혈 맞은편에 있어서 삼성혈을 구경하고 난 후 한 그릇 비우거나, 혹은 구경하기 전 미리 배를 채워두기에 좋다. 

화면 오른쪽에 '국수회관' 이라고 적힌 빨간 간판이 보이시는지?

번잡하지 않은 위치에 있어 정말 찾아가기 쉽다.

어느새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네이버에 검색광고 등록까지 마쳤다.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넉넉한 공간이라서 오래 줄을 서거나 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물론 내가 찾아간 시간이 오후 3시가 넘어서 식사 손님이 없을 만한 시간대라는 건 감안해야 할듯. 

사실 방송출연을 자랑하면 할수록 말만 요란한게 아닐까 하고 더 불안한데...

메뉴는 사진에 나온 대로다. 글씨가 잘 안 보이는 분을 위해 정리하자면 

 삼대국수
고기국수 4,500 물만두 大 10,000
멸치국수 3,500           中  6,000
비빔국수 4,500 아강발 10,000 
콩국수 4,500 돔베고기 20,000
열무국수  4,500 산사춘  6,000
국밥 4,500 조껍데기막걸리  3,000

※ 아강발은 족발, 돔베고기는 삶은 돼지고기를 생각하면 된다. 

고기국수 한 그릇을 주문하니 먼저 부추무침과 김치부터 내온다. 멀뚱멀뚱 보면서 국수를 기다리자니 자꾸 입맛이 당겨서 결국 집어먹고 말았는데 '딱 적당하게 맛있다.' 괜히 많은 반찬이 나오는 것 보다는 이렇게 딱 필요한 것만 알차게 나오는 집이 더 호감도가 올라간다. 

뒤의 그릇에는 잘게 찢은 김이 담겨 있다. 입맞대로 국수에 넣어 먹으면 된다.

부추무침, 김치 모두 맛있다. 특히 김치는 적절하게 산미가 있고 너무 강하거나 모자라지 않아 저항감이 적다.

몇 분 지나자 고기국수가 나왔다. 큰 그릇에 잔뜩 담겨 나오는 걸 보니 양이 만만치 않다. 고명(꾸미)으로 얇게 썬 대파, 채썬 당근, 양념장, 참깨, 삶은 돼지고기가 올라 있다. 특히 삶은 돼지고기는 양도 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좋은 돼지고기를 썼는지 부들부들하게 촉감이 그냥 국수집에서 나온 고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돌뼈만 없었으면 거의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사진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이게 그릇이 꽤 커서 양도 적지 않습니다

고명이 잘 보이게 좀 더 위 각도에서 한 컷.

없이 살던 시절(?)의 근성 때문에 굳이 김을 잔뜩 올리고 한 컷.

면은 중면을 썼는데 쉽게 끊어지는 게 내 기준으로 보면 딱 좋은 정도에서 살짝 더 삶은 듯 하다.

젓가락을 들기 전에 먼저 뽀얀 국물을 맛보았다. 돼지 사골을 썼는지 고기나 내장만으로 낸 국물인지 알아맞출 정도의 실력은 없지만 잡내가 없는 것이 어쩌면 돼지뼈 육수와 멸치 육수를 배합해서 만든게 아닌가 싶긴 하다. 양념장의 맛이 강한 편이라 조심조심 국물에 풀리지 않게 주의하면서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만일 베이스가 되는 육수의 맛이 더 강했더라면 양념장도 필요없었을 것이고, 면발만 제외한다면 일본의 돈코츠 라면과 판박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완성도이다. 오히려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이 돈코츠 라면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 않다. 게다가 국수 자체의 양은 물론 고명으로 얹은 돼지고기도 적지 않아 서울에서 7~8천원 정도는 내야 먹을 수 있는 차슈멘을 4500 원에 즐기는 셈이니 가격대 성능비 또한 탁월. 

처음 식사라 오돌뼈만 남기고 다 비워 버렸다. 꺼어억~

가게가 비교적 넓은 탓도 있지만 가게 인원이 적지 않은 편이다. 일하시는 아주머니 (그중에는 분명 아가씨도 있었을 테지만 .... 죄송) 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얘기 저얘기 하시면서 늦은 점심을 드시는 광경이 재미있어 한 컷을 찍었다. 

오후 4시 쯤에 식사를 하시는 가게 아주머니들.

가게 전경

뒤쪽에 KAL 호텔이 보인다.

잔뜩 부른 배를 움켜쥐고 나오면서 '아 정말 가게 이름처럼 3대를 이어와 번창할 만하다' 라고 생각했다. 이런 곳이 서울에는 왜 없을까 아쉬울 정도다. 삼대국수회관은 제주도에 있는 많은 고기국수집 중에서 가장 깔끔한 맛이라고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확실히 그러한 평을 받을 만하다. 


덧. 삼대국수회관의 홈페이지 http://samdaenoodle.net 에 가면 분점을 모아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려는 것 같다. 반가운 일이지만 만일 서울에 분점이 생긴다면 지리적으로 양질의 돼지고기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을 누리지 못하게 되어 가격이 6천원 정도로 올라가 버리지 않을까 싶어 염려된다. 


다음 글 - 용담골의 성게전복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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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암은 사진으로 보면 대단히 멋있다. 달리 말하면 용두암은 순 사진빨이다. 시작부터 초를 치려면 뭣하러 글을 쓰냐고 이상하게 여길 사람도 있겠지만 행여나 제주여행을 떠난 사람이 용두암에 대해 필요 이상의 환상을 품지 말라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여행지에 대한 환상을 품지 말라는 건 넌센스이긴 하다. 그런 환상이 없다면 뭣하러 여행을 떠나겠어?).  여행지로서 용두암의 가치는, 삼성혈과 더불어 제주시내에 있어 대단히 접근성이 좋다는 정도일 것이다. 

삼성혈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미터 요금기가 3000 원 정도를 가리켰을 때 목적지인 용두암에 도착했다. 물론 차에서 내리자마자 용두암이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고 그저 수평선이 보일 뿐이다. 난간에 늘어선 사람들을 보니 저 위치에 가면 용두암을 볼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카메라를 백팩에서 꺼내어 나름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관광객들이 난간에 기대어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내려갈까?' '아이 귀찮은데 그냥 여기서 보고 말자' 등 의견이 분분한 사람들

숨은그림찾기? 용두암은 대체 어디에.

그러나 전망대에 다가가도 사진에서 봐오던 용두암이 보이지 않고 그냥 바위 해변과 저 멀리 호텔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아무래도 저 아래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모처럼 왔는데 정말로 용 머리 처럼 생겼는지 어쩐지는 확인하고 가야 뭔가 보람이 있지 않겠나. 그러고보니 저만치 뭔가 좀 튀어나온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그 용두암일 확률은 100%. 멀리서 보니까 용은 커녕 뭔가 닮은 동물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

이 주변은 온통 검은 바위로 덮여서 백사장은 꿈도 꿀 수 없다.

아래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용두암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 미끄러워 보이는 검붉은 바위를 조심조심 밟으며 좁은 길을 따라 목적지에 다가간다.

중간에 보이는 검은 천막에서는 전복, 한치 등 술안주과 함께 소주나 얼음물을 팔고 있다.

가다 말고 옆길로 샐 만큼 이 일대의 바위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몇분 간격으로 제주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여객기가 하늘을 지나친다.


여행안내책자에는 용두암의 야경이 기가 막히다고 쓰여 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대번에 야경이 기가 막히다고 홍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실감하게 된다. 배경에 떡하니 현대식 건물이 걸려 버리니 내세울 건 멀리 떨어진 건물이 어둠에 가려질 야경밖에 없었던 거다.  호텔과 용두암과의 실제 거리는 꽤 멀기 때문에 왜 그런 곳에 호텔을 지었냐고 탓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무지막지하게 들어선 관광호텔 덕에 분위기가 다 깨진다.

용두암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모여 있는 사람들. 오른쪽에 보이는 묘한 구조물은 야간 조명이다.


배경을 정리하기 위해서 툴툴거리며 바위를 내려갔다. 물에 젖은 바위라서 미끄러졌다간 다치는 건 물론이고 내 재산 1호 격인 카메라와 렌즈도 산산조각나 버릴 거라서 영 신경이 쓰였다. 내려간 다음에야 간신히 아래처럼 용두암 관광사진스럽게 찍을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용의 머리라기보다는 영화에서 간간히 볼 수 있는 외계생물처럼 생겼다. 동양권에서는 용이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지고 있지만 용두암의 모습은 서양에서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에 더 어울린다.

작은 눈을 빛내며 입을 쩌억 벌려 포효하는 괴물같이 생기지 않았나요?

copyright. Twenties Century-Fox Corporation

그러니깐 이녀석 또는

copyright. GAINAX, Japan

이녀석과 더 닮지 않았나? -_-a

이것도 더 이상 조명이 아니라 괴물을 퇴치하기 위한 초병기처럼 보인다.

일단 이런 괴물들이 연상되기 시작하니 더 이상 구경할 생각이 들지 않아서 슬슬 자리를 뜨기로 했다. 반대쪽 전망대로 가면서 돌아보니 용두암은 왼쪽에서 보지 않으면 그 특유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좀 커다란 특이한 바위 정도랄까.

여기서 퀴즈. 앞에 보이는 바위들 중 용두암은 어떤 것일까요?

반대쪽 전망대에서 보면 이렇다.

오른쪽에서 바라봐도 별 감흥이 없다.

용두암은 삼성혈에 비해 감흥이 영 떨어진다. 안내책자의 설명처럼 밤중에 찾아와서 조명으로 환하게 빛나는 광경을 보는게 훨씬 나을 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 위치상 제주국제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내려오는 여객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게 더 매력적인 장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저멀리 지나가는 여객기를 상대로 외로이 포효하는 용두암

아무튼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삼성혈과 용두암 구경을 마치고 나니 시계는 다섯시 반을 가리킨다. 공항에서 숙소(한화리조트)로 떠나는 셔틀버스는 일곱시에 칼같이 떠나기 때문에 다른 관광지를 들를 여유가 없어서, 조사해 둔 식당 중 한곳을 들러 저녁을 좀 이르게 먹고 숙소에서 야식 겸 안주로 먹을 먹거리를 사는 데 전념하기로 했다.


다음 글 - 삼대국수회관의 고기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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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시 용담2동 | 용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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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따르면 삼성혈은 제주도 주민의 시조가 되는 세 선인이 나타난 곳이다. 가보면 양지바른 곳에 약간 파인 곳이 있고 그 안에 구멍(굴) 세 개가 있는데, 각각 굴에서 세 선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세계의 탄생신화에는 벼라별 게 다 있는데, 제주도의 신화 또한 그에 못지 않다. 

제주국제공항에서 500번 버스 (반드시 제주대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를 타고 시민회관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 제주시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KAL 호텔이 자리잡은 삼거리가 보인다. 

KAL 호텔. 이정도 높이면 충분히 제주시에서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위 사진에서 오른쪽 횡단보도를 건너 같은 방향으로, 그러니깐 차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는 쪽으로 몇백미터 정도 걸어가면 -  바로 삼성혈이 나온다 (크라운호텔이라는 좀 오래된 호텔을 지나면 된다).

제법 분위기 있는 입구.


아침부터 물 두세 잔만 마신 채 김포에서 여기까지 온 터라 아무래도 배를 채울 필요가 있어서 제주에서 고기국수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삼대국수회관 - 다행히 삼성혈 맞은편 가까이에 있다 -  에서 국수 한 그릇을 해치웠다 (삼대국수회관의 고기국수에 대해서는 다다음 글에서 소개합니다).  잔뜩 부른 배를 두드리며 삼성혈 앞에 가니 단체손님들이 꽤 보였다. 대부분 일본이나 중국에서 온 관광객이 아닌가 싶었다. 

단체관광객이 꽤 있는 편이다

한글,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되어 있는 안내문

안내하는 사람이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해서 걸음을 옮긴다. 어른 2500 원이면 글쎄 ... 요새 물가로 치면 분식집 떡라면 한 그릇 값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별로 비쌀 것도 없지만 '땅에 구멍 좀 뚫리고 사당 한 채 지어져 있는 걸 보려고 2500 원이나 내야 한단 말야?' 라고 생각한다면 턱도 없는 입장료로 생각하게 될 미묘한 가격 책정. 

나 어릴 적부터 도통 변화의 기미가 없는 입장권. 하긴 굳이 바꾸는게 오히려 낭비일 듯.

입구까지의 길은 평평하게 잘 닦인 돌들이 가지런히 깔려 있어 걷기도 편하고 그늘 덕에 기분도 좋다.

문지방을 들어서면 관리하는 아저씨가 입장권을 받고 간단하게 어느 방향으로 가시라고 설명해 준다. 삼성혈 내부는 생각보다 널찍하고  안내 표시판의 화살표가 지시하는 대로 잘 깔려 있는 돌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길가에 서계신 분이 관리인 아저씨.

워낙 포석이 잘 깔려 있어서 설사 비가 온다 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거 같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주욱 늘어선 비석들이다. 한자를 잘 몰라서 제대로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제주도의 옛 유력자들이 묻혀 있는 묘의 비석이거나 그 외에 따로 세운 비석이 아닐까? 

날이 맑아서 그런지 주욱 늘어선 비석들이 을씨년스럽지가 않다.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비석들을 뒤로 하고 걸으면 삼성혈로 통한다. 그냥 풀밭에 구멍 세 개만 뚫려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자못 놀랍다. 옛날에는 정말로 성지(聖地) 로서 숭앙받던 곳이었나 보다. 나이도 적쟎이 먹었을 키 큰 나무들로 빽빽한 숲 또한 왠만한 수목원이 부럽지 않을 정도이다. 

삼성혈을 둘러싼 숲은 아름드리 나무들로 빽빽하다.


삼성혈은 정교하고 두텁게 쌓인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함부로 가까이 갈 수 없다. 그나마 한쪽 면을 막은건 돌벽이 아니라 석재 난간이라서 건너편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다 (각도 문제로 선인이 나타났다는 굴은 보이지 않는다). 

삼성혈을 볼 수 있도록 지어진 공간은 대단히 넓어서, 어떤 행사 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의도한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먼 발치에서 지켜봐야 한다.


삼성혈은 숲 속 한 가운데에 자리잡아 자못 신비한 분위기가 서려 있다. 화창 한 날 오전에 찾아간다면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멋진 정경을 볼 수 있을 거 같다. 

삼성혈 앞의 비석은 아마도 세 선인을 모신 무덤이 아닐까?

아쉽게도 선인이 나타난 굴은 안내문의 사진에서나 볼 수 있다.


들어올 때만 해도 '내가 정말 큰 맘 먹고 제주도에 왔으니까 돈 버리는 셈 치고 들어가 준다' 라고 탐탁치 않게 여겼던 마음은 나도 모르는 새 사라지고 단순하면서도 장중한 이곳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버렸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한 스타일의 두터운 돌담과 울창한 숲에 깊은 인상을 받은 탓일 것이다. 


삼성혈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에 있는 건물은 서원 같은 곳으로 조선시대에 지어진 모양인데, 그 중 왼쪽 건물은 이제는 관광객을 위한 홍보용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입장료 2500 원에는 애니메이션 관람료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왠지 눈 버릴까 걱정스러워서 보지 않았다). 

삼성혈로 들어가는 입구. 꼭꼭 닫혀 있다.


세 선인 (삼성시조) 을 모시는 사당이 맨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때마침 애니메이션 관람을 끝낸 일본인 단체관광객들이 우루루 몰려가길래 섞이지 않도록 몇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약간 을씨년스러운 삼성전(三聖殿). 아마도 세 선인의 위패를 모신 것 같다.


삼성전까지 돌아보면 삼성혈 구경이 다 끝난 셈이다. 전시관도 있는 거 같지만 굳이 들어갈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냥 지나쳤다. 사람의 발걸음을 꺼리는 듯한 울창한 숲과 돌담. 예전에는 정말 아무나 못 들어오는 그런 신령한 곳으로 숭앙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입구로 돌아가는 길


묘한 아쉬움에 삼성혈을 둘러싼 돌담을 돌아다 보았다.


삼성혈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약 30~40분 정도 걸렸다. 사실 사진 찍는다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보고 그러지 않았으면 15분이면 충분했을 것 같다. 숲이 울창해 햇볕을 막아 주는 대신 모기 등이 드글거려서 이곳에 올 때는 긴바지, 긴팔 차림이 나을 것이다 (반바지 차림으로 겁없이 들어갔다가 다리를 온통 물리고 말았다. 약국에 들러 물파스를 세 겹으로 발라도 여전히 가려울 정도로 독한 놈들에게 당했다). 눈을 사로잡는 장소라기보다는 그늘을 즐기면서 차분히 걷기에 좋은 곳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서 미련을 털고 용두암으로 향했다. 관리인의 말로는 이곳에서 직접 용두암까지 가는 버스는 없으며, KAL 호텔 앞에서 500 번을 타면 근처까지 가긴 가는데 정류장이 해변에서 멀기 때문에 그냥 택시를 잡아서 가면 2500 ~ 3000 원 정도면 되니까 그게 나을 거라고 한다. 


다음 이야기 - 용두암(龍頭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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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8/20(목) ~ 22(금) 휴가를 얻어 몰래 제주도에 다녀왔다. 발단은 지난달 팀원 중 한 사람이 제주 한화리조트를 예약했다가 가족휴가 일정이 바뀌어서 티켓을 내놓은 일이다. 제주도를 아직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그래? 그럼 나한테 넘겨" 라고 졸라대어 티켓을 싼값에 - 애시당초 사원용 티켓이었으니 할인 혜택을 받는다 - 손에 넣었다. 그때가 7월 말 경으로 서둘러 비행기편을 알아보았다. 제주도가 바다 건너 있다는 건 알았지만 뭐가 그리 비싼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는 편도 10만원을 가볍게 넘어가서 공항이용료 등 합치면 편도 15만원 정도는 너끈히 들었다. 배로 갈까 하고 생각도 해봤지만 막상 알아보니 인천 ~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의 침대가 딸린 객실이 편도 8만원 수준이라서 생각보다 비쌌다. 그래서 일명 저가항공을 찾아서 제주항공 여객기 - 편도 8만원 수준 - 편을 예약했다.

기왕 훌륭한 숙소, 그것도 5~7명이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으니 누군가 같이 갈 사람을 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요근래 1년 정도 사람들과의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아서 - 회사일도 그렇고 생활하는 공간과 시간의 간격이 자꾸 벌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변명해 보지만 그래도 내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건 사실이다 -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결말이었지만 막상 실제로 그렇게 되자 기분이 착 가라앉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왕 이렇게 된 것 혼자 가서 즐거움이건 외로움이건 제대로 맛보자, 라고 생각했다.


김포에서 제주로 향하는 제주항공의 터보프롭 여객기

생각보다 시끄러웠다-_-


출발할 때 김포 지역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제발 제주 지역은 비가 오지 않았으면 하고 마음을 졸였다. 터보프롭 (프로펠러) 비행기는 처음 타보는데 이게 제트 엔진보다 시끄러워서 - 어쩌면 단순히 비행기가 작아 동체와 엔진의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제법 신경이 쓰인다.


깜짝 이벤트. 스튜어디스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최종적으로 남은 사람 5명에게 관광상품 할인권을 주었다. 귀찮아서 불참.



언제나 그렇지만 비행기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땅이라는 게 참 아름답구나 싶기도 하고 만일 여객기가 두동강나면 수천미터 아래로 곤두박질하게 될 텐데 과연 얼마나 무서울까,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는 걸까 등등 ... 그런 쓰잘데기 없는 공상에 빠져 있는 동안 비행기는 착실히 항로를 지나 남해를 건너간다. 


드디어 제주도의 육지가 눈에 들어온다. 제주국제공항은 바닷가와 대단히 가깝다.


김포에서 이륙한지 한시간 5분 정도 지나자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만일 제트 여객기였다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겠지. 제주의 날씨는 맑았지만 구름이 제법 있어서 쨍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애써 가져온 DSLR 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할 거 같아서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역시 프로펠러기가 모양이 예쁘다. 시끄러운 것만 빼면 괜찮은데 말이지.

초등학교 아이들 그림으로 외관을 장식한 대한항공 여객기. 가족단위 탑승자가 많았을 것만 같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수화물보관소에 들러 들고온 짐 중 옷가지와 잡스러운 것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맡겼다. 카메라가 들어있는 백팩만 지고 제주시내를 돌아본 뒤 공항으로 돌아가 맡겨둔 짐을 찾아 한화리조트 행 셔틀버스를 탈 계획이었으니까. 공항을 나서기 전에 여행자 보험 - 3000 원을 내고 가입하면 여행 도중 사고가 나서 다치거나 할 때 보상 및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들어두는 게 좋다 - 을 들고 안내센터에서 제주도 지도와 제주시 버스 노선도를 챙겼다.  ※ 지도는 그렇다쳐도 버스 노선도는 데스크의 직원에게 달라고 해야 건네주니 물어보는 것이 좋다. 


출처: http://jeju.airport.co.kr/doc/jeju/facility/R0301.jsp


수화물보관소는 위 제주국제공항 안내도에서 10번 코너에 위치하고 있으며 밤 9시 까지 운영한다. 여행자보험은 9번 자리에 있는 삼성화재 출장소에서 가입했고, 11번에 자리잡은 여행안내센터에서 지도와 제주시 버스 노선도를 얻었다.

비행기가 김포를 출발한 시간이 오후 1시. 제주도에 착륙한 시간이 오후 2시 10분. 여행자보험 가입하고 수화물 보관소에 짐 맡기고 나니 오후 2시 40분쯤.  한화리조트로 출발하는 셔틀버스는 저녁 7시가 마지막이니 4시간이 안되는 짧은 시간에 시내를 돌아보고 공항으로 돌아와야 한다. 결국 처음부터 겉핥기로 스스슥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부실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 다음 이야기 : 삼성혈과 용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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