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인의 성공을 보는 태도 내가 줄곧 생각해 오던 바로 그 내용을 멋들어지게 표현해 주셨다. 세속적인 성공과 신앙을 자꾸 연결시키려는 한국 기독교의 메이저 성향에 반대하는 터라 더 와닿는다.(신앙, 기독교,)2009-04-05 11:16:48
  • Tumblelog lunamoth 님의 텀블로그 소개. 블로그와 마이크로 블로그 중간 정도라고 하는데….(텀블로그, tumblelog, tlog)2009-04-05 12:25:52

이 글은 우엉님의 2009년 4월 5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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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엉님의 2009년 2월 15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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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커뮤니케이션에 계시는 에반젤리스트 (로 알고 있다) 윤석찬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SBS 에서 얼마전에 방영한 종교 다큐멘터리 4부작에 대한 생각을 올리셨다.


차분한 태도로 여러 면을 살피면서 쓰신 좋은 글이지만, 글에서 엿보이는 좋은 태도와는 별개로 기본적인 시각 자체는 우리가 그동안 흔히 접할 수 있는 주류 개신교인의 그것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도입부의 TV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그러한 모습이 엿보인다.

솔직히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비교 종교학'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  그동안 부각되지 않았던 종교학자들과 신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들을 종합적으로 편집해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좀 충격적인 이유는 국내 개신교도들이 이러한 견해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나 대응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윗 부분을 읽으면서 내심 걱정이 되었다.  '전혀 새롭지 않은 내용이지만 국내 개신교도들이 별로 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라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뉘앙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염려는 사실로 드러난다.

하지만, 목사님들은 교회에서는 일반 신도들에게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신학(神學)이란 것 자체가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하나님에 대한 학문으로 기반이 인간의 기록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지식과 이성을 도외시하고 영을 강조하는 한국 개신교의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신학이 인간의 사고와 언어에 바탕을 둔 2차적인 생성물이기 때문에 (그보다 차원이 높은 1차적인 생성물인) 개인의 은밀하고 직접적인 체험에 걸림돌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어지는 문장을 보자. 

만약 신앙을 역사적 배경과 지식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다른 종교가 나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자 한다면 그 신앙이 지식 이상이 될 수 있을까? 마치 '사랑'에 빠질때도 합리적으로 분석해서 사랑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를 선택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위의 문장에서 문제가 된 것은 "만약 신앙을 역사적 배경과 지식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가 아니라 "다른 종교가 나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자 한다면" 이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며 다른 종교는 좋게 봐줘야 인간의 산물이고 나쁘게 보면 악마의 발명품이라는 기독교의 시각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의견인 것이다.  그런데, 두 문장이 함께 연결되어있다는 점에서 윤석찬님은 기독교 신앙이 역사적 배경과 지식을 통해서는 얻어질 수 없으며, 오히려 다른 종교와의 구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개인의 체험보다 더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성경 말씀을 보도록 하자. 구약 성경에서 신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서 사명을 주실 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다" 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출애굽기 3장 6절). 이처럼 역사적 배경을 신께서 몸소 들먹이며 자신의 진실성과 정통성을 납득시키려는 이러한 진풍경이 구약 성경에서는 수도 없이 등장한다. 불길에 휩싸인 채로 타서 사그라들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여주는 것보다 자신의 조상을 이끌어준 신임을 밝히는 것이 더욱 큰 신뢰를 주었던 것이다.

실제로 성경 자체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전하는 기록물이 아닌가. 성경이 현재의 형태로 정착한 기원후 2~3세기로부터 적어도 1700 년 이상 지난 오늘날, 신학과 고고학의 도움 없이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극한의 자기 교만에 가깝다.

종교적 신앙이라는 것은 '개인적 체험을 통해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관을 가지고 조용히 사회를 변혁하는 것이다.

석찬님의 위 말씀에 대해서는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적 체험이 가진 한계와 위험성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체험은 결국 자신의 사고를 통해서 해석되고 기억 속에 보존되므로 그러한 관점에서 볼때 앞에서 지적한 신학과 동일한 한계를 가지게 된다. 적지 않은 종교 지도자들이 개인의 체험에 매몰되어 다른 길로 빠지는 - 그런 것을 '이단' 이라고 부른다 - 사례를 지겨울 정도로 보지 않았는가.



덧. 이 글은 2부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윤석찬님의 글 중 1부에 해당하는 "종교는 개인의 체험과 영성에 기초해야" 에 대한 반론에 해당한다. 다음 글에서는 2부에 해당하는 "기독교는 사회적 가치가 높은 종교" 중의 일부에 대해서도 다루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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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아님의 블로그에 야훼의 폭력성에 대한 신부님의 답변 이란 글이 올라왔다.

우선 읽은 소감부터 말하자면....

"신부님이 목사들보다 훨씬 낫다"

위 표현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있음은 인정하겠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난 초등학교부터 고3까지 12년간 주일예배를 빠진 게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단 한 번도 저정도 수준의 답변을 교회에서 듣거나 읽어본 적이 없다. 신앙생활 30년이 넘고 장로교회 평신도로서는 가장 높은 장로, 권사가 되신지 오래인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조차도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없는 건 물론이고. 하긴, "바보같은 믿음이 승리한다" 라며 사람을 앵무새로 만드는 개신교 목사님들 밑에서 평신도가 자기 혼자 고민해서 답을 얻기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진실로 진실로 어렵지.

글의 길이가 제법 되기 때문에 전문은 싣지 않고 도아님의 글 앞부분 일부만 인용한다. 관심있으신 분은 위에 링크에서 보시길 바란다.

중동 사막에서 온 깡패, 하나님라는 글에 작은선물 님이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손희송 신부(교수)님의 글이 올려 주셨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관심을 가질만한 질문 네가지에 대한 신부님의 답변이다.

1. 구약에 나타나는 야훼 하느님이 왜 고대 이스라엘 문화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가?
2. 야훼의 폭력성.
3. 오경의 내용이 글자 그대로 진실일까?
4. 이스라엘과 미국의 보수 근본주의자들

글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지만 비기독교도라고 해도 상당히 수긍가는 내용이 많다. 구약의 야훼에 대한 폭력성을 인정하면서 예수 이후의 사랑의 하느님을 들고 있다. 신약과 구약이 서로 배치하면 신약을 우선함으로서 사랑의 하느님을 앞으로 배치하는 융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 성경이 개신교도들처럼 문자 그대로의 진실이 아닌 진실, 과장, 비유임을 얘기하고 있다.

덧. 도아님이 제법 유명한 블로거인 것도 있고, 소재 자체가 워낙 민감하다 보니 계속 댓글이 달리기 때문에 바뀐 걸 체크할 겸 읽어 보다가 다음과 같은 댓글을 만났다:

제가 이런 댓글을 단 이유는... 저는 기독교도인 제 형제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까지 들었답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지않아 다른 형제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해 모든 일들이 잘 풀리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기본적인 종교자세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교회가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세뇌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나...  하나님이 졸지에 성황당 레벨로 떨어져 버렸다. 창피해서 고개도 못 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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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 교회 내부 문화나 분위기에 꽤나 익숙한 편이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점점 교회와 멀어져 버렸지만 그렇다고 신 - 기독교의 공식 명칭은 하나님입니다만 좀 더 범용적인 단어를 쓰겠습니다 - 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무신론자보다는 불가지론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누구는 그게 더 나쁜 거라고 주장하기도 하더라만. 

아버지랑 어머니는 어른이 된 다음에 믿기 시작해서 어느덧 3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기독교인인데 그 아들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기독교를 접한 내가 자꾸 바깥으로 나가려는 것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실 것이다. 아들이라고 주말에 집에 오면 꼭 "요새 교회 이런게 문제라고요. 이거 안 고치면 점점 사람들로부터 미움받아요" 라는 쓴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그 스트레스중 한 몫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럴때 어머니의 주된 방어용 레퍼토리 중 하나가 "그런 사람도 없지 않지만 안 그런 사람이 더 많다" 이다. 참 간편하면서도 위력있어서 당장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효과적인 무기임에는 틀림없다.  하루는  '정말 안 그런 사람이 더 많은지 따져봐야겠다. 역시 숫자로 반박하는게 최고야' 라고 마음먹고 구글신께 '종교단체 사회활동', '종교 단체 봉사' 등 몇 개의 키워드를 통해 신탁 神託 oracle 을 구했다. 그리고는 검색결과를 보고 '엇' 하고 놀랐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사회봉사 또는 자선단체 중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기독교 쪽이라는 통계 (신문기사였던가... 가물가물) 자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단체 숫자로만 비교를 하고 집행하는 예산이라거나 구체적인 사회 봉사 내용에 대해선 나와 있지 않았지만, 개신교 (=기독교) 신자의 비율이 전체 종교 인구의 50% 에 한참 못미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개신교 기반 봉사 단체의 비율이 50% 정도라는건 기독교가 생각 이상으로 사회 전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하나의 논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중에 어머니한테 말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엄마 말대로 안 그런 (=묵묵히 주변 사람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더 많네요" 라고 :)

그러나 불행히도 안 그런 사람이 더 많다고 방어하기 어려운 이슈가 한국 기독교에 상당수 있다는 게 문제이다. 쪽수는 적어도 파워를 고려할 때 교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 한쪽 편에 서면 "안 그런 사람이 더 많아" 라고 말하는게 의미가 없지 않은가. 어떤 분은 "성직자들이 문제인 겁니다" 라고 정말 명쾌하게 말하기도 했는데, 성직자(목사)와 평신도의 관계가 거의 두사부일체 수준인 게 기독교이기 때문에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머니, 이건 그냥 안 그런 사람이 더 많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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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영 신문기사가 불편하다.

* 매일경제  한기총 버지니아텍. 미군돕기 29만5천달러 전달

개신교와 미국의 밀월관계는 거의 100년짜리 전통이나 마찬가지니 이정도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는데,

* 조선일보 한기총, 총선 낙선운동 대상 5명 발표
* 매일경제 한기총 23일 사학법재개정 특별기도회
* 크리스천투데이 사학법 기도회, 강도높은 비판 잇따라

암만 생각해봐도 교회에서 사학법 개정안을 갖고 뭐라 할 정당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개방형이사가 와서 과목에서 성경을 없애고 매주 수요일 1교시에 갖는 학생-교직원 예배를 없애자고 할까봐 그러나? 그래 뭐 다 좋다. 그럴 가능성이 0% 이라고는 못하니까 방어적인 측면에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근데 왜 그것때문에 낙선운동 대상 국회의원까지 지명하고 난리인 거야?

* 뉴스앤조이 [칼럼] 한기총의 부끄러운 기득권 운동

그래 뭐 애초부터 한국에 뿌리내린 복음주의 개신교는 "세상이야 어찌됐건 교회만 방해하지 않으면 우린 상관안해" 를 견지해 왔으니 눈 딱 감고 넘어가 준다고 치자.

* 한겨레신문 저임금에 고용불안 내몰린 교회 관리집사 ‘하느님 맙소사

정말 하나님 맙소사.... 교회가 사회의 나쁜 건 다 배워 따라하는구나. 목사님들 제발 좀 회개하세요. 참고로 대형교회 목사님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알면 왠만한 사람들은 다 기절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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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새 영화 <밀양> 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전도연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는 바람에 여태 보지 못하고 있다 - "와! 칸느 영화제 상받았대" 하고 몰려드는 사람들과 같이 보고 싶지 않다는 묘한 자존심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도연 같은 배우가 있다는 건 요즘 한국 영화의 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시간이 충분히 흘러 사람들이 잊어버릴 즈음에 보려고 하던 차에 ozzyz 님의 블로그 글에서 다음 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필름 2.0 Special Feature 왜 교회는 그녀의 고통을 읽지 못할까 (김진호)

다 읽고 나서 느낌은 "아깝다 아까워" 였다. 글 속에 담긴 생각은 그간 쉽게 보지 못하던 깊이 있고 새로운 방향이었지만 글 자체로는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저정도면 현학적이라고 몰아붙여도 할 말 없다.

현학적 學的 [관형사][명사]학식이 있음을 자랑하는. 또는 그런 것.  (네이버 국어사전)

난 티스토리로 오기 전 개인홈페이지를 운영할 때 "어려운 어휘를 써야 하는 경우는 오직 하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할 때 뿐이다" 라고 일기에 쓴 적이 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입을 열어 말을 하려 해도 말이 안나온다" 라면 될 것을 "육체에 대한 조절능력을 상실하고 자신을 표현할 언어의 붕괴를 체감한다" 라고 쓰는 게 현학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현학적이란 말인가.

마치 최고의 참치 대뱃살에 온갖 양념을 때려박고 굽고 뜨거운물 끼얹고 칼질하고 다져서 내놓은 초밥처럼
- 요새 미스터 초밥왕을 정신없이 보고 있습니다 - 좋은 생각을 잘못된 문장으로 치장해 빛을 가린 아쉬운 경우다. 글쓴이(목사님이라고 한다)가 작문 공부만 제대로 했더라면 저렇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나 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의미나 의도의 전달' 인데 이 분은 '전달' 보다는 '자기 생각을 내보이는 것' 에 정신이 팔린 것 같다. (게다가 문법에도 제대로 들어맞지 않거나 문단을 잘못 나누기도 하는 등 엉성한 구석도 많다)

하지만 내용은 아주 좋다. 담론이니 뭐니 하는 어려운 용어들은 '말' 이나 '글', '이야기' 같은 쉬운 말로 바꿔 가면서 읽으면 '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성경에서 '목자에게는 아흔 아홉 마리 양 보다 길잃은 한 마리 양이 더 소중하다' 라고 한 예수의 정신을 <밀양> 에서 찾아내다니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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