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에 입학해서야 컴퓨터를 제대로 써보기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당연하게 모든 키보드는 이른바 기계식 - 키 하나하나마나 스위치와 스프링 등이 따로 필요한 - 이었다. 전부 그랬으니 다다다닥, 하는 시끄러운 타이핑 소리와 강한 반동이 당연하게만 느껴졌고, 언제인가 멤브레인 키보드가 야금야금 늘어날 때에는 '아아 소음이 줄었다' 라고 기뻐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은 간사한 법. 얼마전에 카페에 비치된 구형 타자기의 키를 눌러보고는 그 묵직한 느낌과 철커덩 하는 소리에 반해 그나마 비슷한 느낌일 기계식 타자기가 없을까 하고 이리저리 알아보았다. 그런 생각을 한 2년만 빨리 했어도 좋았을 텐데. 국산 제품은 영 평이 좋지 않고, 수입품은 옛날 가격에 비해서 거의 두 배 이상 올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별 수 있나. 눈물을 흘리면서도 지르는 수밖에. 그런 속사정을 통해 손에 넣게 된 게 일본 필코 사의 미니 - 숫자 키가 빠진 - 키보드이다. 마제스틱과 제로 두 가지가 있던데 더 싼 제로를 택했다. 


위에서 보듯 포장은 단촐하며 특별한 구석은 없다 - 이런게 11만원이나 하다니! - 다만 먼지나 액체로부터 키보드를 보호할 수 있는 투명 커버가 같이 따라온다. 극성을 떠는 사용자라면 안 쓰는 시간에는 커버를 덮어 놓을 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박스 안에 넣어 두었다. 


USB 케이블이 특이하게 천으로 감싼 스타일인데 어떤 장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미관상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같이 따라오는 건 PS2 포트에 연결하기 위한 젠더와 한글 설명서. 솔직히 그냥  USB  포트에 연결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설명서는 볼 필요도 없긴 하다.


특이하다면 특이한 금빛 - 실제로 금 도금인지는 모르겠다 - USB 단자와 너무나 강해서 정면에서 쳐다보다간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CAPS LOCK, SCROLL LOCK 표시등. 그걸 빼면 그저 좀 작은 평범한 키보드에 불과하다. 물론 시커먼 디자인이 제법 깔끔하고 수려하긴 하지만 그저 그뿐인 것이다. 어차피 이녀석의 진가는 자판을 두들길 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누군가 '이건 완전 소음이다 소음' 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와 멤브레인 키보드보다 강한 반발력. 다다다다닥, 하고 자판을 누르니 뭔가 글을 쓰는 것 같은 만족감이 느껴진다. 


X61s 에 물려 놓은 모습. 안그래도 작은 12.1 인치 화면이 저만치 더 멀어져서 이게 무슨 삽질인가 싶기도 하지만, 역시 내장 펜타그래프 키보드를 두들기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재미가 느껴진다. 혼자 살기에 망정이지 옆에 누군가 있다면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책을 편하게 읽을 수도 없을 만큼 시끄러운 요상한 키보드. 독신생활을 하는 IT Geek 을 위한 물건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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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ld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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