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시
살면서 보거나 듣거나 겪은 일들에 대한, 그리고 마음속 공상에 대한 넋두리를 돗자리 깔고 늘어놓는 곳입니다.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어릴때 찰턴 헤스턴 주연의 <오메가멘 The Omega Man> 이라는 영화를 MBC 주말의 명화에서 방영해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주인공은 저택에서 저녁마다 클래식을 들으며 위스키를 즐기는 우아한 생활을 사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균에 감염되어 흡혈귀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습격을 매일밤 물리쳐야 하는 생활을 몇년째 하고 있다.

그 지겹고 끝없는 싸움을 그만두고 싶어도 박테리아에 대해 면역을 가지고 있어서 물려서 흡혈귀 동료가 될 수도 없다. 그러다가 다른 생존자와 조우하게 되면서 새로운 희망이 보이는데... 좀 뻔한 구석이 있는 SF + 액션 영화이긴 해도 어린 나이에 마구 가슴졸이면서 봤던 것 같다.

그 영화의 원작이 바로 <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d> 라는 것을 알고 서둘러 서점에 찾아갔다. 이런, 기본적인 설정을 빼면 내 기억 속의 영화와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난다. 역시 영화로 만들면서 흥행에 지장을 줄 만한 요소들은 과감히 정리하고 당시의 유행에 맞는 요소를 집어넣었던 것이다 - 그래서인지 원작이 있는 영화들은 항상 'based on' 이란 표현을 쓰나 보다. 원작에 기반은 두었으나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았기에.

원작소설은 액션이나 SF라기보다는 고독, 생존, 타성, 가치의 전복에 대한 이야기를 SF 호러의 형식을 빌려 읽는이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전설이다' 라는 제목은 작품의 줄거리와 맞물려 하나의 역설이 되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또한 인류의 역사에서 네안데르탈인 같은 고대의 인류 또는 인류의 조상이 그대로 자연스럽게 진화하여 현재의 인류가 된 것이 아니라 현생 인류와 고대 인류의 공존기가 있었고 고대 인류가 멸종하여 호모 사피엔스만 남았을 거라는 학설을 이 소설의 결말에 반영해 볼 수도 있겠다.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더라도 충격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덧. 좀 있으면 이 작품이 세 번째로 영화화되어 나온다. 주연이 윌 스미스라고 하니 아무래도 해피엔딩으로 재구성된 또 하나의 전형적인 블럭버스터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원작의 매력에 굴복하여 보러 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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